기적의 포상휴가 (수제비)
Midnight Diner04-71021923
남자들은 자신의 군번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나도 그렇다.
난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육군 제12보병사단 포병연대 79포병 대대에서 군 복무를 했다.
포병,, 뭔가 그럴싸하지 않은가?
하지만 난 포병 부대에서 조리병,, 즉 취사병으로 복무를 했다.
내가 취사병을 하게 된 계기 자체부터 좀 웃긴데,,
난 2004년 6월 22일에 102보충대에 득뽀, 제모라는 두 친구와 같이 입대를 했다.
동반 입대는 아니었고, 우연히 같은 날 세 명의 친구가 입대를 같이 하게 되었다.
이 중에서 제모라는 친구가,, 군 입대 전 한식, 양식, 중식 조리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을 했었는데,,
어디서 장군 조리병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편해 보일까 봐,,
입대를 할 때 그 자격증을 다 들고 입대를 했다.
왼쪽부터,, 득뽀, 제모,그리고 나 야부리
득뽀의 눈시울이 젖어있다..ㅋㅋ
그런데,, 실제로 보충대에서 장군 조리병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모는 준비해온 자격증과 함께 손을 들고 신청을 했고,
뭔가 삘이 왔다고 해야되나? 편한 느낌...? 그런 느낌적인 느낌?
평소에 제대로 된 요리는 해본적이 없던 나도 손을 들고 신청을 했다.
그리고 난 나의 경력 기술서를 온갖 거짓 정보로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호텔관광학부 외식조리학과 전공이며,
1학년 때 조리 동아리 소속으로 주위의 어들에게 요리 봉사활동을 다녔으며,
군 입대 전 서빙으로 알바를 했던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서빙이 아닌 주방에서 근무를 했던 것으로 그렇게 나름 경력을 만들었다.
차이니즈 레스토랑 '친친' 근무 시절.. 누가봐도 서빙인데,, ㅋㅋ
근데 이게 웬일,,
나랑 제모는 최종 8명 정도 남은 면접까지 가게 되었다..
실제로 요리를 할 줄 아는 제모는 그렇다고 치고,, 난 뭐지..ㅋㅋ
내 거짓 정보가 그렇게 훌륭했던 것일까,,?
그런데,,
" 야부리하고 제모 있나? "
" 네!! 여기 있습니다!! "
" 너희 둘은 돌아가라!! "
우린 최종 면접을 보지도 못하고, 떨어지게 되었다..
이유는,, 보충대에서 인성 검사라고 350문항 정도를 체크해서 푸는 검사가 있었다.
350문항 중에 동일 문항도 상당히 많이 존재하는데,
이게 귀찮아서 제대로 체크하지 않고 막 찍었던 우리는,,
인성 부적격자로 판단되어 장군 조리병 면접에서 떨어진 것이다..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고,,
우리는 장군 조리병 지원했던 기록이 남아있어서 최종적으로 둘 다 취사병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취사병 생활이 시작 되었다.
근데 난 요리적 센스가 나름 있는 편 이었다.
어릴 때 부터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으면 옆에 가서 하는 걸 보고,
혼자 있을 때 흉내를 내서 만들어 먹어 보기도 했고,
밥 정도는 할 줄 알고, 김치볶음밥과 김치찌개 정도는 끓일 줄 아는 그 정도의 남자였다..
취사병 생활,,
장단점이 극명한 군 보직이다.
일단 취사병은 군인들의 기상 시간인 6시보다 일찍인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조식을 준비한다.
(그대신 야간 근무,, 불침번이나 보초근무는 없었다)
그리고는 조식을 다 마치면 배식을 하고 중식을 준비하는 9시 반 정도까지 휴식을 취하고
11시 반까지 중식 준비를 마친 후 3시 반까지 휴식을 취한다음
5시 반까지 석식 준비를 마치고 취침 시간인 10시까지 휴식을 취하는 특수한 보직이다..
그리고 취사병에게 주말이나 휴일은 없다.
주말이나 휴일이라고 군 장병들이 식사를 안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취사병들은 1년 365일 쉬지 못하고 밥을 만들게 된다.
취사병 단체 사진,,
다른 부대원말로는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도,,
우리에게선 짬 냄새,, 음식 냄새가 났다고 한다..
하지만 난 비교적 취사병 생활을 잘 적응했다.
다른 보직에 비해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여유도 있고,
특히 다른 보직의 군인들이 훈련이나 진지공사 등 힘든 일을 할때도
우리는 밥만 만들면 됐기 때문에, ㅋㅋ
물론 대량의 식사를 준비하는게 힘들긴 했지만, 비교적 나에게는 알맞는 보직이었다.
(여름의 취사장 내부 온도는 45도 가량 올라간다.. 그땐 정말..)
내가 제대 하는 날 먹은 마지막 짬밥..ㅋㅋ
소고기무국에 김치, 김, 그리고 맛살 볶음 인듯
서두가 많이 길었다.
취사병의 최고 장점이라고 하면,
뭐니뭐니해도 식재료를 가지고 맛잇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린 조식, 중식은 우리가 만든 일반 짬밥을 먹었지만,
석식은 항상 따로 재료를 가지고 특식을 만들어서 먹었다.
주로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소불고기덮밥 등
고기가 듬뿍 들어간 특식을 만들어서 먹었고,
항상 석식 준비를 하며 게임을 통해 특식을 만들 사람을 정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은 내가 게임에서 졌나보다..
그래서 난 특식 메뉴로 수제비를 만들기로 했고,
그 날 석식에서 내가 맡은 메뉴가 국 이었는데, 무슨 매운탕이었다..
국은 다소 물 끓은 시간 등 준비 하면서 시간이 많이 남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미리 반죽을 만들었다.
그런데 반죽을 내가 좀 많이 만들어 버렸다..
8명이서 먹을 반죽을 만들면 되는데,
2배가 넘는 한 15인분의 반죽을 만들어서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되나? 고민 중이었다.
난 개인적으로 멸치 국물로 맛을 내고
감자와 수제비 반죽만 들어간 깔끔한 수제비를 좋아한다.
그리고 사진처럼 양념장에 다진 고추와 파, 양파를 넣어서
기호에 맞게 넣어 먹을 수 있는 그런 수제비 완전 좋아한다!
그래 그거야!!
문뜩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요리가 매운탕 아니가?
매운탕에 수제비 넣어서 많이들 먹자나?
이런 생각이 났고, 그 처리가 힘들었던 반죽을 펴서 매운탕에 투하하기 시작했다.
300인분의 매운탕에 맞는 양은 아니었지만,, 뭐 건져 먹는 사람이 대박인거지 ㅋㅋ
그런데 갑자기,,
" 충성!! "
대대장이 아무런 말도 없이 취사장에 들어왔다..
난 왼손에 뜯다만 밀가루 반죽을 들고 오른손으로 경례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대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 야부리.. 자네는 뭐 하고 있는가? "
" 일병! 야부리! 밀가루가 좀 남아서 매운탕에 넣으면 맛있는 걸 같아 수제비를 만들어서 넣고 있었습니다! "
난 나름 임기응변으로 대처했다.
사실 군대안에서의 음식 재료는 함부로 다뤄서는 안된다.
모자라서도 안되고, 남아서도 안된다.
항상 정해진 음식에 모든 재료를 딱 알맞게 써야된다.
그러니 내가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한 말 자체가 큰 오류를 범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대대장은 아무런 말도 없이 취사장을 한 번 둘러보곤 돌아갔다.
걱정이 많았다.
나와 그리고 취사 분대장 그리고 급양관이라고 불리는 간부까지
영창을 가거나 징계를 먹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일단 그 날 당일은 큰 문제없이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다음 날 기상 나팔이 불고 해가 밝았다.
갑자기 인사 장교가 나를 찾았다..
' 아,, 드디어,, X됐다..'
근데 이게 뭔 소리인지,,?
난 상과 함께 표상 휴가를 받게 되었다.
뭐 대충 장병들의 영양과 맛 있는 식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진짜 어안이 벙벙했다..
상과 포상 휴가를 받은 난,
사실을 아는 우리 취사병들과 급양관과 함께 입을 굳게 다물었고,
우리 부대에서 유명한 '수제비 휴가'를 받게 되었다.
그 후에도 대대장이 내가 맘에 들었나보다..
때때로 나에게 특식을 요구하고는 했고,
난 그럴때마다 있는 재료와 없으면 급양관이 밖에서 재료를 공수하기까지해서 대접했다.
대대장에게 대접한,,
닭고기케슈너츠와 고등어구이
우리나라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포상 휴가를 받은 장병들이 많다.
하지만 나처럼 거짓 수제비 휴가를 받은 장병은 또 있을까?
어쩌면 수제비를 좋아했던 나에게 내가 스스로 그 날 특식 메뉴를 수제비를 골라서
스스로에게 기회를 제공한 점.. 그리고 나름의 임기응변을 발휘한 점 등,,
여러가지 운과 상황들이 겹쳐서 받게 된 휴가지만,
그때 생각을 하면, 평생 쓸 운을 이때 다 쓴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아직 로또 4등도 당첨이 안 되는 건 아닐까..?
풋
나만큼 특이하게 포상 휴가를 받았던 분들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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