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부리의 심야식당

해감의 추억 (꼬막)

Midnight Diner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 운동장은 당연히 흙으로 되어 있었고

운동장 한 쪽에 씨름장이라고,

모래로 둥글게 만들어진 공간이 있었다.

 

다들 기억나시죠?

타이어로 둘레를 만들어놓은 저 디자인이란 참,,

 

 

그 씨름장에서 모래를 뒤적거려 조개 껍질을 찾아내어서

조개 껍질들끼리 눌러서 부숴지는 쪽이 지는

'조개싸움'이라는 놀이를 하며 논 기억이 있다.

대개 '코뿔소'라고 불리던 한 쪽 끝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조개를 찾아낸 사람이 주로 이겼는데,

한 번씩 전 날 집에서 먹은 꼬막 껍질을

직접 학교까지 들고와서

모든 이들의 챔피언이 되는 녀석들이 있었다..

 

 

이봐 그건 엄연히 반칙 이라고,,

 

 

 

우리집은 엄마가 꼬막의 껍질을 까서

양념장을 발라서 반찬을 해줬기 때문에,

꼬막의 껍질을 제대로 본적도 없고,

껍질이 그렇게 두껍고 강한줄도 몰랐다.

여튼 꼬막 껍질을 구하기가 힘들었던 나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제모'에게 도움을 청했다.

제모의 할머니는 조개집을 하고 있었다.

난 그 조개집에서 꼬막은 상대도 안되는 백합 껍질을 구했고,

제모가 대합 껍질을 들고 나타나기 전까지는

조개 싸움 챔피언에 등극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어느새 내 기억 속에서 그냥 반찬일 뿐이었던

꼬막의 기억은,,

2009년 여름 내 나이 26살에,,

확실한 추억을 남기게 된다.

 

 

앞서 몇 번 다뤘듯이 난 대학교 다닐 때

한 동아리의 회장이었는데,

3학년 재학 시 회장 자리를 맡았었고,

4학년에 올라가면서 후배에게 회장 자리를 넘겨줬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아리의 여름 엠티 기간이 다가왔고,

회장을 맡은 후배 녀석이 엠티에 꼭 참석해주길 바란다고

하도 쪼르고 쫄라서,, 4학년 임에도 엠티에 참여하게 된다.

(사실 4학년들은 엠티에 잘 안 나타난다... 민폐 였던가?)

 

그때도 썩 내키지 않았던게,

일단 1박2일도 아니고 2박3일의 일정이었고,

장소가,,,, 전남 벌교.....

그 당시 부산에서 3시간 가량이나 걸리는 먼 곳 이었기에

썩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가게 되었다.

 

 

벌교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당시 회장에서 물었다.

 

 

" 회장아, 우리 가서 뭐 먹니? 안주는? "

 

" 네 행님! 벌교 간다 아입니까! 벌교가면 꼬막 먹어야지예~ "

 

" 꼬막? 거기가서 사면 싸나? 해먹을줄 아나? "

 

" 싸긴 뭘 싸요! 가면 다 뻘인데 거기서 우리가 직접 캐야지요~

그리고 요리는 행님이 다 할거 아입니까 ㅋㅋ "

 

 

이런 뭔 강아지 소리인지,,

그래 뭐 꼬막 요리,, 그닥 어려운건 아니니깐,,

내가 한다고 치더라도,, 우리가 직접 캔다고?

 

 

" 진짜 우리가 캔다고? "

 

" 네 형님~ 진수 형님이 거기가면 다 뻘이라서

꼬막 2박3일치 먹을 거 충분히 캔대요! "

 

 

아 그랬다.. 이 모든건 진수의 농간이었다.

(진수는 돼지국밥편에 나왔던 그 진수다..)

후배들은 진수의 말만 믿고,

쌀과 김치 그리고 술만 준비하고 다른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단다..

그러게 엠티비가 좀 싸긴 했어,,,,

 

 

" 야 아무리 거기가 꼬막이 많다고 해도,

2박3일동안 어떻게 꼬막만 먹노? "

 

" 에이 거기 꼬막은 맛이 죽인데요~ 믿고 가보입시다!! "

 

 

그렇게 반신반의하면서 벌교까지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벌교에는 진짜로 뻘이 천지였다..

여기도 뻘 저기도 뻘 이족에도 뻘 저쪽에도 뻘..

뻘의 천국 벌교!!

 

벌교에 도착한 진수와 후배 녀석들이 벌교를 캤다.

난 당연히 꼬막 채취따위에서는 빠졌다..^^

 

 

10명이 넘는 아이들과 뱉은말이 있던 진수는 꼬막을 캐러 나갔고,

난 돼지와 기타 녀석들과 양념장을 준비했다.

꼬막 양념장이라고 뭐 있나?

간장에 고추가루 넣고 설탕 조금 넣고 참기름 조금 넣으면 끝!!

아 깐마늘 좀 넣으면 더 좋다!!

 

그렇게 녀석들이 꼬막만 캐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 행님!! 여기 꼬막 캐왔습니다!! "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의 꼬막이었다..

한 20키로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그래 이 정도면 2박3일동안 충분히 먹고 남지,,,

그런데 갯벌에서 막 캐와서 그런지,,

꼬막의 비주얼이 가히 참..

 

녀석들이 캐온 꼬막은 대충 이런 모습이었다..

꼬막 반,, 뻘 반..

 

 

" 흠,,, 이거 이대로는 못 먹겠는데?

잠시만 물어보고 올께~ "

 

 

여튼 요리를 책임지게 되었던 나 이기에,

제대로 된 요리를 했어야 되기 때문에,

내 알아서 요리를 하기 보다는 검증 된 자원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렇게 민박집 아줌마에게로 갔다.

 

 

" 아주머니, 이 꼬막 캐온거 먹으려고 하는데요..

이거 삶아서 껍질 벌리면 다 익은거고

그 뒤에 양념장 발라서 먹으면 되지요? "

 

" 응 학생, 그렇게 먹으면 되지! 아 그리고 해감 해야지!! "

 

 

해감....?

아 들어본 기억이 있다..

물에 담궈서 조개가 품고 있는 흙을 뱉어내게 하는 작업이었던가..

 

 

" 아 네 해감!! 그것부터 해야 되네요?

그건 한 한시간 하면 되나요? "

 

" 무슨 소리~ 최소 하루는 해야 돼!! "

 

 

 

띠로리~~

 

 

 

우리가 시장이나 마트에서 산 꼬막이라면,

해감을 안하거나 한 두시간만 해감을 하면 되지만,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꼬막은,

막 갯벌에서 캔 꼬막이기에,,

최소 하루 아니 이틀은 해야 제대로 먹을 수 있다나,,,

 

 

 

그렇게 난 진수를 포함한 녀석들이 불러 모아서 개지x을 했다.

단순히 꼬막을 당장 못 먹어서 아니라,

엠티를 책임지는 녀석들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책임하게 일을 진행 한것에 대해 심하게 질책을 했다.

 

 

" 그래서 지금 당장 뭐 먹을건데? 응? "

 

" 네,,형님,, 지금은 밥이랑 김치랑 과자 조금 밖에,, "

 

" 회비.. 회비는 얼마 남았노? "

 

" 진수 형님이,, 꼬막 먹으면 된다고 해서

회비는 이미 다쓰고 없습니다.. "

 

 

멀리까지 온다고 차량 렌트비에 주유비 등 그리고

술 사는데 회비를 다쓰고,, 회비가 남아있는게 없단다..

저것들 해감해서 내일 먹는다고 해도,,

오늘은 어쩌란 말이냐,,

 

 

 

난 급하게 나를 포함한 4학년 중에 엠티에 참여한 놈들을 모았고,

그 놈들에게 얼마씩 돈을 각축했다..

사실 이러려고 4학년들 오는거지 뭐..

그 돈으로 근처에서 돼지고기를 구입해서

급하게 두루치기를 만들어서 그 날 밥과 술 안주로 먹었다..

뭐 다음날은 저 맛있는 꼬막을 먹을수가 있으니깐,,

 

 

문제는 다음 날,,

해감에 대해서 무지했던 우리는

수돗물에 맛소금을 섞은 물에 꼬막을 해감했고,

여튼 그 물에도 나름 해감은 됐었지만,

물에 담가둔 꼬막은 계속 해서 뻘을 뱉어내고 있었고,

수시로 물을 갈아 주고 있었지만,

저녁에 다 되어서도 계속 해서 해감은 이어졌다.

도저히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라서 일단 삶아보자 싶어서

꼬막을 삶았다..

 

꼬막은 삶기고 뚜껑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더더욱 많은 뻘을 뱉어냈다.

삶으면서도 이걸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일단 다 삶고 양념장을 발라서 진수한테 먹였다.

 

 

" 윽~~ 흙 냄새.. 흙 맛 퉤퉤 "

 

 

그랬다.. 우린 이틀째에도 꼬막을 못 먹었고,,

난 또 4학년 녀석들과 이제 3학년 녀석들까지 불러서

돈을 각출하고 근처에서 돼지고기를 구입해서

급하게 두루치기를 만들어서 그 날 밥과 술 안주로 먹었다..

 

 

맞다 우린 내가 만든 맛있는 두루치기를 먹기 위해

멀고 먼 전라도 벌교까지 갔었다!!

 

 

이 녀석들은 이 상황에 뭐가 좋다고,, 이렇게 놀고 있었는지,,,ㅋㅋ

왼쪽이 돼지, 오른쪽이 문제의 발단 진수!

 

 

 

 

벌교까지 가서 우리는 두루치기만 먹고 돌아왔지만,

그 나이에 학생들은 뭐,, 술만 들어가면 다 즐겁지..

그래도 나름 재밋게 놀다가 돌아왔다..

꼬막을 제대로 먹지도 못한게 한이 되어서 그런지,

지금도 가끔 술을 마시면서 꼬막을 안주로 먹곤 하는데..

그때 조금만 제대로 해감을 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크다 ㅋㅋㅋ

뭐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인데,,,,,

 

 

 

 

 

 

 

 

벌교 엠티에서 돼지와 김소주라는 후배 녀석 한 명이,

민박집 진돗개를 괴롭히다가,,

스트레스를 받은 진돗개가 자기 새끼를 물어 죽였다.

돼지와 김소주는 민박집 아줌마로부터 

그 진돗개가 엄청난 혈통의 진돗개라며

1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를 받았었는데,,

어찌되었는지?

 

어디서 또 말아먹을라고!! (돼지국밥)

Midnight Diner

이 포스트를 작성하려고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TV나 영화에서 보면 말이야,

 

" 주모 여기 국밥 하나 말아주소! "

 

이런 대사와 장면이 엄청나게 나오고,

다소 우락부락한 인상에 수염이 더룩더룩한 장정이

국밥을 우걱우걱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과연 그 국밥은 어떤 국밥일까?

소고기국밥? 돼지국밥? 설렁탕? 육개장?

 

조선시대나 이럴 때,,

일반 서민들이 고기가 들어간 국을 그렇게 먹기는 어려웠을테고,,

찾아보니,, 시래기 등이 들어간 우리가 현재 '장터국밥'이라고 불리는

그런 국밥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돼지뼈를 우린 국물에

여러 부위를 돼지 고기를 수육으로 삶은 후 넣고

밥과 함께 말아서 먹은 음식이다.

대개 부추를 곁들이고 밑 간은 새우젓으로 하며,

그리곤 기호에 따라 양념장을 넣어서 먹는 누가봐도 대중적인 음식 돼지국밥!

 

 

 

내 기억속에 처음으로 등장한 돼지국밥은 언제 였을까?

다소 쉽게 생각이 떠올랐다.

초등학생 2~3학년때 쯤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나와 형은 어릴 때 내가 살던 동네

(부산 사직동)에 위치했던 한 국밥집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고향 선배분이 장사를 하시던 가게 였는데,

가게에 들어서는 첫 느낌부터 어린 내게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돼지국밥집의 특유의 냄새랄까,,

뭔가 돼지 비린내와 새우젓 냄새가 섞인 냄새가 진동했고,

어린 내게는 지금은 입맛이 다셔지는 냄새지만,,

그 당시는 인상을 찡그리게 만드는 그런 냄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주문을 해서 돼지순대국밥이 나에게로 도착했는데,

그 첫 인상이,,

 

 

출처 - 봉봉님의 네이버 블로그! 주소 친절히 나와있네요!!

부산 사직동에 위치한 2층돼지순대국밥

사직동의 맛집 중 하나이다!

 

 

 

일단 고기가 엄청나게 컸고, 그 안에 들어있는 순대의 비주얼도 그닥,,

그리고 일단 국물의 색깔이 약간 탁하고 검했다.

흰 국물과 빨간 국물은 먹어 본적이 있지만,

이런 색깔의 국물을 초등학생 2학년이 이해하기에는,,

나와 형은 그렇게 먹는 둥 마는 둥 국밥의 대부분을 남겼다.

그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을 했었던 것 같다.

 

 

" 이게 진짜로 맛있는건데, 느그가 먹을 줄 모르네! "

 

 

아버지,, 초등학생이 어떻게 그런 음식을 먹을 줄 알겠어요,,

근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 말은 옳았다.

돼지국밥은 진짜로 맛있는 음식이었다.

 

 

돼지국밥은 애초에 부산이 원조인 음식이기에,

(한국전쟁 당시 밀면과 함께 피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알려진다.

냉면을 먹고 싶었던 사람들이 밀면을 만들어냈고,

설렁탕 등 고기국을 먹고 싶었던 사람들이 비교적 싼 돼지고기로 돼지국밥을 만들어냈다)

부산 사람인 나는 접할 기회가 많았고,

고등학생 이후부터는 챙겨먹는 아니 찾아먹는 그런 음식이 되었다.

 

 

 

그렇기에 돼지국밥에 얽힌 에피소드가 나름 많은데,,

우선 짧게 두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20살 대학교 1학년때의 일이다.

나와 친구들은 동아리방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밤새 술을 마시고

거기서 뻗어서 잤던 그런 날이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밝고,,

우린 수업대신 해장을 하기 위해 나섰다.

 

 

" 뭐 먹으까? 문 연데 있나? "

 

" 몰라,, 지금 이 시간에 국밥 집 밖에 없을 걸..? "

 

" 그라면 국밥 먹으러 가자~ "

 

" 가자! 그래 가자! 가자! "

 

 

학교 앞에 위치한 다소 허름한 돼지국밥집 이었는데,

사실 맛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평균 이상은 되었던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부산에서는 어딜가서 먹어도 평균 이상은 된다.

 

그 자리에는 나와 돼지, 대퐁이, 진수

그리고 한 두명이 친구가 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전 날 마신 술로 인해 속이 허했던 우리들은

돼지국밥이 나오자마자 열과 성을 다해 국밥을 흡입했다.

 

그 중에서 대퐁이의 흡입 속도는

마치 삼국지 만화에서 장비가 술을 마시는 속도와 비슷했는데,

그래도 대화를 이어가며 국밥을 먹어가던 우리와는 달리

대퐁이는 걸신이라도 걸린 듯 국밥을 먹어댔다.

 

근데,, 그러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입에 국밥이 가득한채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다가,

사래가 걸렸나보다..

대퐁이는 입 안에 가득한 씹다만 국밥을

앞자리에 앉아있던 진수의 면상에 다 뱉어내고 말았다.

 

 

" 아 돼지새끼~ 그렇게 쳐 물때 알아봤다 "

 

 

대퐁이와 진수를 제외한 우리는 웃음보가 터졌다.

조금 뱉어낸것이 아니다..

가득 담은 세 숟가락 분량의 씹다만 국밥이 진수 얼굴로 향했었다.

 

대퐁이는 미안해하며 진수를 닦아주려고 했지만,

진수의 화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당시 생각해보면, 진수는 화를 그렇게 많이 내던 아이도 아니었고,

사실 대퐁이보다 진수가 더 돼지였다.

 

그 누구보다도 국밥이 잘 어울리는 면상의 대퐁이와 진수,,

이 사건으로 둘이 멀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대퐁이가 음식을 급하게만 먹으면 우리는

 

 

" 돼지새끼~ 그렇게 쳐 묵으니!! "

 

 

를 남발하며 대퐁이를 놀려댔다.

아마 이제 삶의 여유를 조금 찾아가는 대퐁이는

조금은 여유롭게 음식을 먹지는 않을까?

 

아니다..

 

불과 한 달 전쯤에인가,,

대퐁이와 술을 마시고 마지막으로 국밥집으로 향한 기억이 있다.

난 배가 불러 1/3 정도는 남겼는데,

대퐁이는 이미 국밥 그릇을 비웠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나도 음식을 빨리 먹는 편에 속하는데 말이지,,

 

 

 

나는 지금 대퐁이와는 친하게 잘 지내고 있지만,

진수와는 연락을 하지 않고 살고 있다.

대퐁이와 진수도 마찬가지인데,

언젠가 둘이 다시 만나서 국밥을 먹는 장면을 보고 싶다..

ㅋㅋㅋㅋ 내 욕심인가?

 

 

 

국밥 편을 마치면서,,

5살때 부터 내 친구였던, 베스트 프렌드?

제모가 생각이 났다.

 

제모는 항상 연애에 서툴렀다.

아니 서투르기보다는 맞는 표현일지 몰라도 여자한테 당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한 번 제대로 좀 똘끼 충만한 연상의 누님을 만난적이 있는데,

이때 맘 고생이 특히 심했다.

제모는 그럴때마다 집 앞에 위치한 학 국밥집으로 향해서

혼자 국밥과 소주 2병을 비우곤 했다..

 

출처 - 020music.blog.me

제모가 항상 향했던 부산 사직동의 경주박가국밥

위의 모습은 현재 리모델링을 마친 상태지만, 제모가 향할때는 좀 더 구수한 형태의 모습이었다.

 

 

 

그 당시 20대 후반 정도 되는 나이었는데,

그 당시의 남자들이 식당이든 술집이든 혼자 가서 술을 먹는 모습은

좀 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기에,

우리는 그 국밥집을 '제모BAR'라고 불렀다.

 

아직도 제모가 혼자 쓸쓸하게 제모BAR로 향하던 모습이 선하다.

 

지금 제모는 결혼까지해서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고 있어서

혼자 국밥집으로 향하는 일은 없겠지만,,

흠 앞으로도 없길 빈다!!

 

 

 

 

이제는 진짜 마지막으로,

어떤 친구가 되었든 전 날 술을 옴팡지게 마시고,,

다음 날 부시시한 모습으로 같이 국밥집으로 가서 해장을 하는 모습

그런 모습이 약간은 많이 그리운 현재다..

 

 

먹튀의 추억 (소고기)

Midnight Diner

소고기를 주제로 글을 쓰려고 생각을 해보니,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생각이 났다.

이 이야기는 그 첫 번째 이야기!

 

 

정확히 나이가 기억이 난다.

25살때의 이야기 그러니깐 2008년때의 이야기다.

 

 

2008년에 나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학교에서 '호텔뱅크' 라는 나름 학술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나의 전공은 '컨벤션 이벤트'와 '호텔 경영' 복수 전공을 하고 있었고

호텔 관광 대학내에 우리 동아리 '호텔뱅크'는 나름 꽤 규모가 큰 학술 동아리였다.

물론 학술 동아리이지만,, 대학 동아리들이 대개 그렇지 않나?

학술 보다는 술잔을 기울이는데 더 열심히 하던,, 그런,, ^^

 

 

오른쪽이 그때의 나이고,,

왼쪽이 '고등어 구어'편에도 언급되었던 돼지다.

당시 내가 '호텔뱅크'의 회장

돼지가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아 사진상에는 둘 다 담배를 피고 있지만,

현재는 둘다 담배를 피지 않는다..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하며 술을 마시는데 노력을 기울이다보면,,

학교 앞, 동아리방에서 마시는것에 지치게 된다.

그래서 돼지와 난 동아리 엠티를 기획하게 된다.

 

대학생들의 엠티라..

 

공기 좋은 곳

탁 트인 곳에서 죽어라고 마시자고 작정하는,,

그리고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완성이 되는,,

생각만 해도 설레이는 그런..^^

 

우리 동아리는 학년 당 인원이 30명 이상이 되는

나름 규모가 있던 동아리 였기에,

엠티를 기획하게 되도 쉽게 진행을 할 수 없는,,

준비 과정이 엄청난 일이었다.

그 당시도 돼지와 나는 엠티를 준비하면서 필요한 물품을 사기위해서

부산에 위치한 '진시장' 이라는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부산 동구에 위치한 진시장이다.

지금은 꽤 현대화 되어있지만,

조선시대부터 개설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유서깊은 시장이다.

부산에서 제일 규모가 큰 시장이다!

 

 

 

엠티 때 필요한 여러가지 물품을 구매하고

돌아가려고 하다가,

 

 

" 돼지야! 우리 밥 먹고 갈까? "

 

" 그럴까? 뭐 먹을래? "

 

 

동아리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깐,

엠티의 예산 규모가 학교의 지원금까지 더해서

몇 백만원이나 되기에 그 당시 내가 가진 돈은 많았다..

물론 그 돈을 부정된 방법으로 사용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이럴때의 밥 값 정도는 경비 처리할 수 않은가?

 

 

" 돼지! 우리 소고기 먹자! "

(돼지한테 소고기를 권하다니,, 미안)

 

" 소고기? 비싸자나,, "

 

 

사실 25살의 대학생이 소고기를 사먹다니,,

 

 

" 회비로 경비 처리 하면 된다!! "

 

 

그렇게 우리는 진시장 근처에 위치한 한 소고기 집으로 향했다.

그때의 시간이 한 3시정도 되었으니 식당은 한산했고,

식당의 종업원들도 다소 의아한 눈빛과 함께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방으로 자리 잡지 않고,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 뭐 먹을건데? 뭐 먹으면 되는거고? "

 

 

돼지는 메뉴 선택에 있어 다소 소극적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사실 뭐 다녀본적이 있어야 당당하게 주문을 제대로 하지..

그래도 당시 난 친구 중에 한 명이 식육식당을 운영을 하고 있어서,

주워들었던 모든 기억을 떠올려서 돼지를 대신하여 주문을 주도했다.

 

 

" 이모~ 여기 등심 3인분 주시구요! 아 돼지 우리 술도 한 병 시킬까?"

 

" 그.. 그럴까? 낮이니깐 딱 한 병만 마시자! "

 

" 그래 소고기 먹을 땐 비싼 술 마셔야 한다! 소주 이런거 말고! "

 

 

비싼 안주를 먹을 땐 비싼 술을 마셔야한다는 생각은 아직까지도 나한테 유효하다..

그래서 참치집에서 참치랑 술을 즐기때에도

소주 대신 '화랑'을 즐기곤 한다.

 

 

그런데 비싼 술을 뭐 마시지?

비싼 술도 마셔봤어야지,, 알지..ㅋㅋㅋ

우리는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마셔봤던 복분자나 이런거 말고

'천년약속' 이라는 당시에 나름 인기가 있었던 술을 한병 주문했다.

 

 

상황버섯 발효주,, 천년 약속

2005년 부산에서 APEC 정상회담이 열렸었는데,

당시 건배주로 쓰였던 만큼 나름 잘 나가던 술이다..

건배주로 천년약속과 보해 복분자술이 사용이 되었는데,

복분자는 코리아 레드 와인으로,

천년약속은 코리아 화이트 와인으로 소개가 되었다는데,

외국인들은 복분자는 비교적 맛있게 마셨지만,,

천년약속은 대부분...^^

 

 

 

그렇게 천년약속과 소고기를 구워 먹고 있을때 쯤,,

갑자기 식당이 시끄러워지면서 대규모의 손님이 들어왔다.

그 손님들은 다들 머리가 빨간띠를 두르고 있었다.

한 회사의 노사 단체의 시위단 같았는데,,

갑자기 그 시간에 100명에 가까운 시위단에 가게에 들어왔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저녁시간을 준비할만한 그 시간에

갑자기 가게에 100명에 가까운 단체 손님이 들이닥치니,,

그 소고기 집은 난리가 났다..

몇 안되는 직원들은 단체 손님을 챙기느라 분주했고,

그로인해 우리는 더더욱 소외받기 시작했다..

 

 

 

소고기의 양대 산맥이라고 볼 수 있는 등심과 갈비살

난 개인적으로는 떡심이 가득한 등심과 육회를 같이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고기를 좀 더 주문하려고 했었다..

 

 

" 이모! 사장님!! 여기 고기 2인분 더 주세요!! "

 

 

그렇게 아무리 불러도 주문을 해도 우린 철저히 무시당했다.

많이 바빠서 그러려니 하기엔 좀 도가 지나쳤고,

기분이 나빠진 우리는 가게를 나서기로 했다.

 

 

" 가자~ 뭐 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

 

" 그래 가자~ "

 

" 여기 계산해 주세요!! "

 

 

우린 계산을 요청했고,,

카운터 앞에서 몇 분 동안 몇번을 계산을 요청했지만,,

역시나 철저히 무시당했다..

 

 

 

그 순간!

돼지와 나의 눈빛은 통했고,,

 

 

 

우린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가게 밖으로 몸을 옮긴 후..

가게문을 나서자마자 뛰었다..

 

그 스피드는 우사인 볼트를 넘어 치타 정도랄까?

 

그렇게 골목 골목을 뛰어 한 500m는 도망쳐 온 듯 하다..

 

 

 

" 아놔~ 먹튀!! "

 

" ㅋㅋㅋ 내 태어나서 이런적 처음이다..!! "

 

 

돼지는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네,

난 뭐 어릴때 한 두번 있었던 듯 했지만..

 

어째뜬 우리는 우리 동아리의 엠티비를 부정한 곳에 쓰지 않았고,

물론 의도와는 다르게 경비 처리도 하지 않았다!!

회장 그리고 부회장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해서 뛰었고 최선을 다해서 돈을 아꼈다!

 

 

 

작년 여름에

해운대에 위치한 값비싼 소고기 집에서 돼지에게 소고기를 사준적이 있다.

그 날은 등심이 아니라 갈비살이었는데,

역시 돼지는 소, 돼지 가리지 않고 잘 먹드만,,^^

 

이제는 내가 얻어 먹을 차례인가?

 

 

시간이 지나서 그 소고기집에 들러서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처럼,,

그땐 그랬어요.. 하면서 소고기 값을 지불하고 싶지만..

솔직히 어디였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고..

또 뭐 그다지 그러고 싶지도 않은게 사실이다!!

 

 

 

위스키 맛이 난다고? (고량주)

Midnight Diner

술을 마신 다음 날 해장을 하기 위해

중국집으로 전화해서 짬뽕을 주문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 술에 찌들려 본 사람이라고,,,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오늘 이야기는 그렇다 찌들린 얘기다..

 

 

10년 정도 지난 일으로 기억을 하는데,

내가 20대 중반의 일이니,,

그땐 뭐 다들 그렇지 않나?

나와 친구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만나서 술잔을 기울였다.

6~7명의 친구들이 만나서 술을 마신 것 같은데,

1차를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2차로 중식 주점을 찾았다.

지금은 찾아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번화가마다 자주 보였던 '상하이 객잔' 이라는 중식 주점 이었다.

 

부산 동래역 근처에 위치했던 우리가 갔었던 상하이 객잔이다..

현재는 1층 조선 칼국수와 2층 상하이 객잔 모두 다른 가게로 바꼈으므로,,

뭐 거림낌 없이 그대로 올린다!!

 

 

1차에서 이미 얼큰하게 취해있었고,

2차에서 뭐가 그리 배가 부르겠냐?

6~7명이서 탕수육 큰거 하나랑 짬뽕탕 하나 시켜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근데 저 멀리 다른 테이블에서 고량주 (빼갈)을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다.

 

 

" 야! 우리도 저거 마셔볼래? "

 

" 메뉴판 달라고 해봐! "

 

" 보자 보자.. 천진 고량주? 이거 싸네 작은거 4천원밖에 안한다! "

 

" 시켜라!! 시켜라!! "

 

그렇게 우리는 고량주를 한 병 시켰는데,,

우리 앞으로 도착한 고량주는,,

 

사이즈별로 가격이 달랐다.

우린 당연히 제일 싼 제일 작은 사이즈를 시켰었고,

6~7명이 일인 당 한잔도 안되는 그런 작은 용량이었다.

 

 

" 엥 이게 뭐고? 이게 4천원이가? "

 

" 한잔씩만 못 마시겠네? 몰라 빨리 마시면 마시면 되지! 난 마신다!! "

 

 

한 친구가 뭣도 모르고 자기 소주잔에 고량주 한 잔을 따라서 마셨다..

난 말리지 않았다.. 말릴 필요가 있냐고?

앞선 포스트에서 다룬 적이 있는데, 사실 난 중식 레스토랑 서빙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때 천진 고량주는 물론이고 갖가지 고량주를 마셔봤었다.

어땠냐고? 풋

 

 

" 으아아아아앙나앙악~ 이게 뭐고? 아 목이 탄다 타 식도가 타고 있다 "

 

 

마셔본 사람은 안다.

특히 천진 고량주는 도수가 48%에 이른다.

한 두번은 맛을 봤던 스카치 위스키와 도수는 비슷하지만,

고량주 첫 경험의 짜릿함은 위스키 첫 경험의 짜릿함의 10배 아니 100배 이상이다..

 

 

" 미친놈 ㅋㅋ 우리가 이거 마시면 죽는다!! "

 

난 중식 레스토랑에서 일할 당시에 고량주를 맛 본 후,,

일이 진짜 힘들 때, 육체적 고통을 잊기 위해 한잔을 마셨던 기억이 났다.

그 만큼 적어도 나에게는 에너지 드링크를 넘어서는 마약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겁 없을 나이의 친구들 몇 명은 자신있게 고량주를 마셔봤고,,

다들 우웩 우웩을 외쳐대며

 

" 저거 갖다 버려라!! "

 

 

소주 한 잔 정도의 양이 남아있는 고량주의 병을 '희쇠' 라는 친구가 들었다.

(희쇠는 희성이 변강쇠라는 뜻이다)

그러고는 소주가 담겨져있는 자신의 소주잔에 고량주를 조금 따라더니 한잔을 원샷했다.

 

 

" 끼야아악,, 와우 야 이거 맛있다!! 위스키 맛 난다! "

 

" 뭐? 뭐라고? 위스키? "

 

 

20대 중반의 나이였던 남자들에게 위스키는 나름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당시는 위스키를 파는 곳이라고는 여자들이 나오는 술집이나 나이트 밖에 없었고,

그만큼 고가를 줘야 마실 수 있는 그런 비싼 술이었다.

 

희쇠의 말을 믿고 우리는 천진 고량주를 더 시켜서

모두들 자신의 소주에 고량주를 타서 마셨다.

비율은 8:2 정도?

근데 이건,,

 

 

유레카!!

 

 

진짜로 소갈 (소주+빼갈)에서는 위스키 맛이났다.

그 당시 하이트진로 회사에서 나왔던 '랜슬롯'이라는 저가 위스키가 있었는데,

그 위스키의 맛과 비슷했다.

특유의 박카스 향 같은것이 나는 톡쏘는 맛이라고 할까?

 

내 친구들,,

왼쪽에서부터 한데렐라, 이밥솥, 도토끼, 제모, 찌바리, 폰태

그리고 오른쪽 밑에 거대한것이 득보

희쇠는 사진에 없네,,

그리고 무톰보랑 돌콩도 안보네요..

다들 엄청 촌스러워 보이는데,, 나름 이때는 이게 유행이었을 겁니다..

 

 

 

우린 모두 극찬을 하며 소주와 천진 고량주를 타서 만든 소갈을 마셔댔다.

지금이야 보드카나 데낄라나 아그와? 이런 것들 팔기도 많이 팔고

위스키도 쉽게 접할수 있지만,, 그땐 정말 비쌌고 파는 곳도 많이 없었다.

보드카로 유명한 앱솔루트도 오리지널 말고는 국내에 시판되는 것도 거의 없던 시절이라,

소갈은 우리에게 너무나 맛있는 술이었다.

그렇게 천진 고량주 병만 5병을 넘어갈때 쯤 이었다..

 

 

다소 재밋는 상황이 벌어졌다.

난 소갈이 맛있긴 했어도 고량주의 위험성을 알기에 조절해서 마시고 있었는데,

뭣도 모르고 맛있다고 계속 마셔대던 친구들이

한 두명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소주와 타서 마시긴 했어도

내가 대충 계산해봐도 도수가 28도 가량은 되는 술을

스트레이트로 그렇게 마셔댔으니 버틸수가 있나?

 위스키처럼 얼음을 넣어서 마신것도 아니고..

 

 

정확히 나 그리고 한 명,, 누군지는 모르겠다..

제외한 모든 친구들이 술집에 뻗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난 친구들 사이에서 술이 약한편에 속하기도 하고,

20대 중반의 남자들이라면 한창 술을 잘 마실 때의 나이인데,,

2명 빼고 4~5명이 술집.. 2차에서 뻗다니!!

부산 남자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존심에 금이 갈,, 아 됐고..

 

 

그렇게 어떻게 다들 집에가고 어떻게 헤어졌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린 앞으로 어디서 술을 마시든,

안주가 아무리 좋은 중식 메뉴라고 해도 고량주는 쳐다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고량주는 나와 친구들에게 공업용 메탄올 취급을 받는 그런 술이 되어버렸다.

 

 

 

 

 

지금 글을 적고 있는 난,,

사정이 있어서 앞서 언급한 친구들과 잠시 떨어져있다.

야부리의 심야식당이라는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생각해보니,,

반 이상이 친구들과의 에피소드인데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많이 아쉽다.

하지만 영화 친구에서 나온 대사가 사실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좋은 모습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 친구 아이가~ 친구끼리 미안하거 없다!! "

 

 

 

 

기적의 포상휴가 (수제비)

Midnight Diner

04-71021923

 

남자들은 자신의 군번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나도 그렇다.

난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육군 제12보병사단 포병연대 79포병 대대에서 군 복무를 했다.

포병,, 뭔가 그럴싸하지 않은가?

하지만 난 포병 부대에서 조리병,, 즉 취사병으로 복무를 했다.

 

 

내가 취사병을 하게 된 계기 자체부터 좀 웃긴데,,

난 2004년 6월 22일에 102보충대에 득뽀, 제모라는 두 친구와 같이 입대를 했다.

동반 입대는 아니었고, 우연히 같은 날 세 명의 친구가 입대를 같이 하게 되었다.

이 중에서 제모라는 친구가,, 군 입대 전 한식, 양식, 중식 조리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을 했었는데,,

어디서 장군 조리병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편해 보일까 봐,,

입대를 할 때 그 자격증을 다 들고 입대를 했다.

 

왼쪽부터,, 득뽀, 제모,그리고 나 야부리

득뽀의 눈시울이 젖어있다..ㅋㅋ

 

 

그런데,, 실제로 보충대에서 장군 조리병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모는 준비해온 자격증과 함께 손을 들고 신청을 했고,

뭔가 삘이 왔다고 해야되나? 편한 느낌...? 그런 느낌적인 느낌?

평소에 제대로 된 요리는 해본적이 없던 나도 손을 들고 신청을 했다.

그리고 난 나의 경력 기술서를 온갖 거짓 정보로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호텔관광학부 외식조리학과 전공이며,

1학년 때 조리 동아리 소속으로 주위의 어들에게 요리 봉사활동을 다녔으며,

군 입대 전 서빙으로 알바를 했던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서빙이 아닌 주방에서 근무를 했던 것으로 그렇게 나름 경력을 만들었다.

 

차이니즈 레스토랑 '친친' 근무 시절.. 누가봐도 서빙인데,, ㅋㅋ

 

 

근데 이게 웬일,,

 

나랑 제모는 최종 8명 정도 남은 면접까지 가게 되었다..

실제로 요리를 할 줄 아는 제모는 그렇다고 치고,, 난 뭐지..ㅋㅋ

내 거짓 정보가 그렇게 훌륭했던 것일까,,?

그런데,,

 

 

" 야부리하고 제모 있나? "

 

" 네!! 여기 있습니다!! "

 

" 너희 둘은 돌아가라!! "

 

 

우린 최종 면접을 보지도 못하고, 떨어지게 되었다..

이유는,, 보충대에서 인성 검사라고 350문항 정도를 체크해서 푸는 검사가 있었다.

350문항 중에 동일 문항도 상당히 많이 존재하는데,

이게 귀찮아서 제대로 체크하지 않고 막 찍었던 우리는,,

인성 부적격자로 판단되어 장군 조리병 면접에서 떨어진 것이다..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고,,

우리는 장군 조리병 지원했던 기록이 남아있어서 최종적으로 둘 다 취사병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취사병 생활이 시작 되었다.

 

 

근데 난 요리적 센스가 나름 있는 편 이었다.

어릴 때 부터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으면 옆에 가서 하는 걸 보고,

혼자 있을 때 흉내를 내서 만들어 먹어 보기도 했고,

밥 정도는 할 줄 알고, 김치볶음밥과 김치찌개 정도는 끓일 줄 아는 그 정도의 남자였다..

 

 

 

취사병 생활,,

장단점이 극명한 군 보직이다.

일단 취사병은 군인들의 기상 시간인 6시보다 일찍인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조식을 준비한다.

(그대신 야간 근무,, 불침번이나 보초근무는 없었다)

그리고는 조식을 다 마치면 배식을 하고 중식을 준비하는 9시 반 정도까지 휴식을 취하고

11시 반까지 중식 준비를 마친 후 3시 반까지 휴식을 취한다음

5시 반까지 석식 준비를 마치고 취침 시간인 10시까지 휴식을 취하는 특수한 보직이다..

그리고 취사병에게 주말이나 휴일은 없다.

주말이나 휴일이라고 군 장병들이 식사를 안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취사병들은 1년 365일 쉬지 못하고 밥을 만들게 된다.

 

취사병 단체 사진,,

다른 부대원말로는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도,,

우리에게선 짬 냄새,, 음식 냄새가 났다고 한다..

 

 

하지만 난 비교적 취사병 생활을 잘 적응했다.

다른 보직에 비해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여유도 있고,

특히 다른 보직의 군인들이 훈련이나 진지공사 등 힘든 일을 할때도

우리는 밥만 만들면 됐기 때문에, ㅋㅋ

물론 대량의 식사를 준비하는게 힘들긴 했지만, 비교적 나에게는 알맞는 보직이었다.

(여름의 취사장 내부 온도는 45도 가량 올라간다.. 그땐 정말..)

 

내가 제대 하는 날 먹은 마지막 짬밥..ㅋㅋ

소고기무국에 김치, 김, 그리고 맛살 볶음 인듯

 

 

 

서두가 많이 길었다.

 

 

취사병의 최고 장점이라고 하면,

뭐니뭐니해도 식재료를 가지고 맛잇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린 조식, 중식은 우리가 만든 일반 짬밥을 먹었지만,

석식은 항상 따로 재료를 가지고 특식을 만들어서 먹었다.

 

주로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소불고기덮밥 등

고기가 듬뿍 들어간 특식을 만들어서 먹었고,

항상 석식 준비를 하며 게임을 통해 특식을 만들 사람을 정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은 내가 게임에서 졌나보다..

그래서 난 특식 메뉴로 수제비를 만들기로 했고,

그 날 석식에서 내가 맡은 메뉴가 국 이었는데, 무슨 매운탕이었다..

국은 다소 물 끓은 시간 등 준비 하면서 시간이 많이 남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미리 반죽을 만들었다.

그런데 반죽을 내가 좀 많이 만들어 버렸다..

8명이서 먹을 반죽을 만들면 되는데,

2배가 넘는 한 15인분의 반죽을 만들어서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되나? 고민 중이었다.

 

난 개인적으로 멸치 국물로 맛을 내고

감자와 수제비 반죽만 들어간 깔끔한 수제비를 좋아한다.

그리고 사진처럼 양념장에 다진 고추와 파, 양파를 넣어서

기호에 맞게 넣어 먹을 수 있는 그런 수제비 완전 좋아한다!

 

 

 

그래 그거야!!

 

 

문뜩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요리가 매운탕 아니가?

매운탕에 수제비 넣어서 많이들 먹자나?

이런 생각이 났고, 그 처리가 힘들었던 반죽을 펴서 매운탕에 투하하기 시작했다.

300인분의 매운탕에 맞는 양은 아니었지만,, 뭐 건져 먹는 사람이 대박인거지 ㅋㅋ

그런데 갑자기,,

 

 

" 충성!! "

 

대대장이 아무런 말도 없이 취사장에 들어왔다..

난 왼손에 뜯다만 밀가루 반죽을 들고 오른손으로 경례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대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 야부리.. 자네는 뭐 하고 있는가? "

 

" 일병! 야부리! 밀가루가 좀 남아서 매운탕에 넣으면 맛있는 걸 같아 수제비를 만들어서 넣고 있었습니다! "

 

 

난 나름 임기응변으로 대처했다.

사실 군대안에서의 음식 재료는 함부로 다뤄서는 안된다.

모자라서도 안되고, 남아서도 안된다.

항상 정해진 음식에 모든 재료를 딱 알맞게 써야된다.

그러니 내가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한 말 자체가 큰 오류를 범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대대장은 아무런 말도 없이 취사장을 한 번 둘러보곤 돌아갔다.

 

 

걱정이 많았다.

나와 그리고 취사 분대장 그리고 급양관이라고 불리는 간부까지

영창을 가거나 징계를 먹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일단 그 날 당일은 큰 문제없이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다음 날 기상 나팔이 불고 해가 밝았다.

갑자기 인사 장교가 나를 찾았다..

 

 

' 아,, 드디어,, X됐다..'

 

 

근데 이게 뭔 소리인지,,?

 

 

난 상과 함께 표상 휴가를 받게 되었다.

뭐 대충 장병들의 영양과 맛 있는 식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진짜 어안이 벙벙했다..

 

상과 포상 휴가를 받은 난,

사실을 아는 우리 취사병들과 급양관과 함께 입을 굳게 다물었고,

우리 부대에서 유명한 '수제비 휴가'를 받게 되었다.

 

 

그 후에도 대대장이 내가 맘에 들었나보다..

때때로 나에게 특식을 요구하고는 했고,

난 그럴때마다 있는 재료와 없으면 급양관이 밖에서 재료를 공수하기까지해서 대접했다.

 

대대장에게 대접한,,

닭고기케슈너츠와 고등어구이

 

 

 

우리나라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포상 휴가를 받은 장병들이 많다.

하지만 나처럼 거짓 수제비 휴가를 받은 장병은 또 있을까?

 

어쩌면 수제비를 좋아했던 나에게 내가 스스로 그 날 특식 메뉴를 수제비를 골라서

스스로에게 기회를 제공한 점.. 그리고 나름의 임기응변을 발휘한 점 등,,

여러가지 운과 상황들이 겹쳐서 받게 된 휴가지만,

그때 생각을 하면, 평생 쓸 운을 이때 다 쓴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아직 로또 4등도 당첨이 안 되는 건 아닐까..?

 

 

 

 

 

 

나만큼 특이하게 포상 휴가를 받았던 분들 댓글로 남겨주세요!!

너희들은 고등어 좋아 하자나? (고등어구이)

Midnight Diner

대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난 전혀 뛰어난 학교라고 할 수 없는 지방 4년제 대학교를 다녔고,, 

(네이버 웹툰,, '복학왕'의 기안대학교보다는 조금 좋은,,)

수업을 마치면,,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가는일이 대부분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학교가 부산에서 반송이라는 다소 외곽에 위치해 있었기에,, 학교 앞에서 마시기 보다는

동래라는 부산의 한 번화가로 나와서 자주 술을 마셨다..

특히 대학교의 많았던 친구들 중 아직까지도 '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친구와 주로 술을 마셨는데,,

(이 친구는 별명답게 뚱뚱했다.. 그리고 지금은 더 뚱뚱해졌다..)

스물 다섯, 여섯 살 때쯤의 대학생이 무슨 돈이 많겠는가,,

우리는 싸고 그리고 조금은 조용한 단골 술집을 찾기 위해 애를 썼고,,

우리는 동래에서 몇 군데의 단골 술집을 만들게 된다..

오늘은 그 단골 술집 중 한 곳의 이야기다..

 

 

 

'즐거울 樂'

 

이 가게의 이름이 즐거울 락이었는데,, 첫 인상은,, 흠,,

통나무 등으로 인테리어가 되어있었고,, 조금은 많이 머리가 벗겨진 왜소한 체격의 인상 좋은 사장님이 우리를 반겼다..

 

 

여기다 그래 여기야!!

 

즐거울 락의 내부 모습이다

 

 

고등어구이, 오뎅탕, 계란말이, 새우구이 같은 포장마차같은 메뉴를 파는 가게였고,,

고등어구이 같이 싼 메뉴는 단돈 7천원에 불과한 아주 저렴한 우리에게는 딱 맞는 그런 가게,,

 

우리는 여기서 주로 고등어구이를 먹었다.

부산에서는 고등어구이가 두가지 종류로 나눌수가 있는데,,

고등어를 맛있게 구은 후,, 찍어 먹을 수 있는 간장과 함께 나오는 일반 고등어구이와

고등어를 구은 후 마지막에 매콤달콤한 양념을 발라 나오는 양념 고등어구이 (고갈비라고도 불린다)

 

 

즐거울 락에서는 두가지 고등어 구이 중 선택을 할수가 있었고,,

우린 담백한 일반 고등어 구이를 주로 먹었다..

그리고 고등어 구이와 함께 주로 소주..를 즐겼지만,,

가게의 인테리어 덕분인지,, 아님 너무 많이 둘이서 마셔서 취하기 싫어서인지,,

돼지와 나는 소주 외에도 대통이라고 불리는 대나무 통술도 많이 즐겼다..

 

 

대나무 통술은 병으로 나오지 않고 특유의 대나무 통에 담겨져서 나왔는데,,

도수 자체가 소주보다 약했고,, 맛은 청하 비슷하게 목넘김이 훨 좋았던 술이다..

 

 

고등어 구이를 시키고 소주 2병 정도 마시면,, 계산 할 금액이 13,000원

주머니가 가볍다 못해 거의 털털 비어있었던 우리에게는 너무나 좋은 가게였고,,

그래서인지 우리 둘은 이 가게에 일주일에 평균 3번 정도는 들르게 되었다..

(그래도 돼지는 나보다 풍족했다.. 그래서 돼지가 나보다 돈을 많이 냈었다.. 고맙다..)

 

우리는 그때 어려서 단골 가게라도 쉽게 사장님과 친해지거나 그러지는 못 했는데,,

즐거울 락의 사장님은 편한 인상과 함께 우리에게 먼저 다가왔다..

40대 초반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성중공업 정직원으로 근무하다가 명예퇴직을 하고 가게를 차렸단다.. 내 기억으론 그렇다..

워낙 자주오다보니 고등어 구이 하나 시키는 우리에게도 많은 서비스 안주를 주었었고,,

우리는 염치없게도 넙죽넙죽 잘 주워 먹었었다..

 

 

그렇게 2년 정도 그 가게를 들락 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 야부리야! 돼지야! 너희들 이번 주 금요일에 뭐하니? 술 마시러 올래? "

 

 

뭐지 이건,, 한번도 이런적이 없었는데,, 헌팅인가,,

 

 

" 학교 마치면 아무것도 할 것 없어요,, 왜요? 그 날 뭐 있어요? "

 

" 사실은 가게를 접기로 했어.. 그래서 그 날 가까운 사람들 모아서 파티 하려고.. "

 

" 네.. 꼭 오도록 할께요.. "

 

 

다소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가게에 손님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동래라는 곳이 신종 번화가로 한창 뜨고 있을때쯤이라,, 가게의 월세도 엄청 났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단골 가게가 사라지다니,, 그렇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돼지와 나는 그 날 즐거울 락으로 갈건지 말건지를 한참을 고민했다..

다소 슬프기도 했고,, 사장님의 주위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 같은데,,

우리가 뭐라고 가서 그 자리에서 좀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컸다..

우리는 동래의 다른 가게에서 1차를 하다가 결국은 즐거울 락으로 가기로 하고 향했다..

 

 

 

" 야부리, 돼지 왔니!! 잘 왔어 "

 

" 네 형님 (첨엔 사장님이라고 부르다가 어느 순간부터 형님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

 

" 그래 뭐 먹을래? 안주 아무거나 다 되니깐 골라봐! 다 공짜야 "

 

 

공짜.. 이런 기회가 많이 없는데,, 우린 눈치가 보였다..

사실 이 가게에는 저렴한 고등어 구이 같은 메뉴가 주 메뉴 였지만,,

대하구이같은 그때 당시로 25,000원 가량의 고가 메뉴도 상당히 존재했었다..

우린 망설였다..

 

 

" 돼지.. 대하구이 달라고 할까? "

 

" 좀 그렇지 않나? 어쩌지,, 진짜 어쩌지,, " 

 

 

사실 우리는 둘 다 A형에 소심한 대학생이었다..

결국 그렇게 우리는 아무것도 고르지 못하고,, 계속 망설이고만 있었다..

 

 

" 야부리, 돼지야 왜 아직 안 고르니? 먹고 싶은게 없니? "

 

" 아니요,, 그게.... "

 

계속 그렇게 망설이고만 있으니,,

 

" 너희들 고등어 좋아 하자나? 맞지? 고등어 해줄께 있어봐.. "

 

 

 

OH MY GOD....

 

 

사장님,, 아니 형님,, 우리가 고등어를 좋아하긴 하지만,,

오늘 공짜라면서요,, 그럼.. 꼭 그렇게 고등어를 먹을 필요가..

하지만 소심한 우리는 결국에는 사장님이 맛있게 구워온 고등어를 먹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 가게에는 사장님의 지인이 많았기에,, 우리는 급하게 고등어와 소주잔을 비우고 가게를 떠났다..

 

 

" 형님 우리 이제 가보겠습니다.. "

 

" 벌써 가려고? 더 먹지,, 다른거 더 해줄까? "

 

" 아니요.. 빨리 가봐야해서요.. "

 

" 그래,, 앞으로 뭐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공부 열심히 하고!! "

 

" 네 형님,, 형님도 앞으로 뭐 하시든지 행복하세요,,!! "

 

 

 

즐거울 락에서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 이후로 돼지와 나는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면서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돼지는 방송작가가 되겠다는 푸른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을 했다..

이상한 케이블 채널 막내 작가를 하더니,, 결국엔 메이저에 입성은 못하고 택배를 했다..

 

 

돼지가 서울로 떠난게 한 7년은 된 것 같은데,, 그 이후로 우리가 본 횟수는 10번도 안되는 것 같다..

앞으로 이 블로그를 작성 하면서 돼지와의 얘기가 많이 나올 것 같은데,,

돼지와 가장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 즐거울 락 그리고 고등어와의 추억이다..

물론 우리는 생선 보다는 육고기를 좋아했지만,,

형편 탓에 우리의 소주 파트너가 되었던 고등어,,

사는 지역이 달라서 앞으로 저녁에 만나서 고등어와 함께 소주 한 잔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려나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일반 고등어 & 양념 고등어 두 마리 시켜놓고,, 소주 한 잔 마시고 싶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절했던 즐거울 락 사장님,, 아니 형님,,

머리는 더 벗겨지셨는지? 건강 하신지? 지금은 무슨 일 하시는지..?

만약에 만나게 되면 지금은 제가 소주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한 여자의 돈까스 (한국식 돈까스)

Midnight Diner

10년은 더 된 내가 군대를 제대한지 얼마 안 되었을때의 일이다..

 

 

군대를 제대하고,

공부? 아르바이트? 운동? 다 제쳐두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을때,

전 날 술을 엄청 마시고 11시가 다 되어갈때까지 침대에 뻗어있었다..

 

 

" 학아! (난 집에 학이라고 불린다..) 엄마랑 백화점가자!!"

 

 

저 아줌마가 왜 저러지.. 갑자기 왠 백화점이람,,

엄마랑 같이 쇼핑을 간게,, 중학생 때 였나,, 의아함에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 아빠 카드 슬쩍했다! 빨리 가서 이것저것 다 사자!! "

 

 

그렇지! 그거지! 난 서둘러 엄마와 함께 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사정을 들었다..

어제 밤,, 그러니깐 내가 밖에서 얼큰하게 술에 취하고 있을때 쯤,,

아빠가 집에 귀가를 했고,,

아빠의 외투에서 단란한 곳의 영수증 100만원짜리를 엄마가 발견을 한 것이다..

그로인해 엄마와 아빠는 심하게 아주 심하게 말싸움을 하셨고,,

엄마는 그 사이에 아빠 카드를 슬쩍하고는 나와 함께 백화점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나이스

 

 

" 오늘 완전 다 사버릴꺼야!! 한도 초과 될 때까지 다 써버리자 학아!! "

 

" 응 알겠어요!! 어머니!! ㅋㅋ "

 

 

하지만 우리의 쇼핑은 그리 길지도,, 그리 손이 무겁지도 않았다..

엄마는 남편의 과소비에 기분이 나빠 남편의 카드를 슬쩍한 여자이기도 했지만,,

주부가 먼저였다..

막상 백화점에 가서는 왜 이리 가격이 비싸나며,, 막상 입을 일도 없다며,,

옷 사기를 망설이다가,,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그러고는 내 옷이라도 사자고 나를 부추겼지만,,

나도 뭔가 선뜻 당기지 않아 됐다고 그냥 돌아가자고......그랬다..

 

 

" 학아 그럼 우리 맛있는거 먹고 가자! 우리 오랜만에 돈까스 먹을까?"

 

 

돈까스? 돈가스? 그 돼지고기 빵가루 묻혀서 튀긴 그거?

맛있기야 하지만,, 맛있는거 먹자고,, 비싼거 먹을것 처럼 해놓구선,,

 

엄마는 이상하게 백화점 식당가를 싫어하신다..

그래서 백화점에서 나와서 근처의 한 돈까스 집으로 나는 엄마를 안내했다..

 

 

내가 엄마를 데리고 간 돈까스 집이다..

(가게를 홍보를 할 생각도 없고,, 폄하를 할 생각도 없으니 일단은 모자이크)

 

돈까스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엄마가 하는 말을 들으니,, 옛날 생각이 문득났다..

어릴 때 내가 초등학생 쯤 일때,, 우리 가족은 돈까스를 먹으러 자주 외식을 했었다..

그 시절에는 돈까스가 나름 고가의 메뉴였고,, 돈까스를 판매하는 곳 자체도 많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양식 메뉴를 판매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시초였던 곳이

바로 돈까스 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돈까스를 먹으러 가는 내내 엄마는 기대감이 아주 컸다..

 

" 옛날에 아빠랑 엄마가 데이트 할때,

아빠가 어찌 알고 부산역에 돈까스 집에 갔는데 너무 맛있는거야~

  그때는 돈까스가 뭔지도 모르고 아빠도 마찬가지였지..

나이프를 주는데 이게 뭔가 하고 ㅋㅋ"

 

뭔가 응답하라 시리즈나,, 옛날 영화에서나 볼법한.. 그런 이야기를 엄마가 들려줬다..

 

 

그래도 엄마가 돈까스 먹을 생각에 기뻐하는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가게가 들어가서 메뉴판을 엄마에게 보여줬다..

 

" 엄마 뭐 먹을래? 난 등심까스! "

 

" 어,, 엄마는 그냥 돈까스 "

 

" 그러니깐 어떤 돈까스? "

 

" 돈까스가 돈까스지 어떤 돈까스가 어딨노? 그냥 시켜라"

 

 

뭐야.. 모르면 메뉴판이라도 보던가.. 난 그냥 내가 시킨 등심까스를 엄마도 똑같이 시켜줬다..

 

 

그런데,, 돈까스가 나오자마자,, 엄마는,,

 

 

" 이게 뭐고? 왜 돈까스가 썰려져 있노?"

 

" 요새는 다 썰어서 나온다! "

 

" 그게 뭐고? 그리고 소스는 왜 없노? "

 

" 여기 있자나 여기에 직접 찍어 먹으면 된다 "

 

" 스프도 안주나? 스프 말고 이 된장국 같은 건 뭐고? "

 

 

그랬다.. 엄마에게는 일식 돈까스는 처음보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일식 등심까스를 먹는 내내 나에게 불평불만을 털어놓았다..

 

 

" 이게 무슨 돈까스고? 하나도 안 돈까스다!!

이게 어떻고 저떻고 이게 뭐고... 궁시렁 궁시렁 "

 

" 그냥 먹어라!! 좀!! 맛있기만 하구만!! 그런 돈까스 이제 안판다!! "

 

 

하지만 엄마는 먹는 내내 좀 처럼 일식 돈까스를 제대로 먹지도 못 하고,, 맛있어하지도 않았다..

 

 

 

엄마에게는 이런 돈까스가 돈까스라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일식 돈까스를 부정했고,, 기껏,, 데리고 왔던 나도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못했다..

엄마와 나의 쇼핑과 외식은 너무나도 찝찝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어쩌면 엄마는,, 돈까스가 진짜로 먹고 싶었다기 보다는,,

아빠와 데이트할때의 기억과 나와 형을 데리고 어릴 때 외식을 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돈까스가 아닌,, 조금은 많이 생소한 일식 돈까스를 먹게 되니,,

크게 실망을 했나보다..

 

 

그 당시에는 일식 돈까스가 갑자기 큰 인기를 타서 많은 가게가 생기고 있을 때 쯤이었고,,

우리가 아는 한국식 돈까스집은 거의 없어지고,, 분식집이나 김밥헤븐 같은 곳 에서

만들어진 돈까스를 튀겨서 파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이다..

하지만 지금은 왕돈까스나 직접 한국식 돈까스를 수제로 만들어서 파는 가게가 많이 생겼다..

기회가 되면 엄마를 데리고 스프도 나오고 직접 썰어서 먹는 돈까스 집에 가야겠다..

 

 

 

엄마 아니,, 조명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60대 여성에게

돈까스는 아직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지?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 한 남자와 데이트하던 시절 먹었던

그 돈까스는 아직도 기억이 뚜렷한지..?

 

돈까스를 좋아하는 꼬마 둘을 데리고 나가서 먹었던

돈까스의 기억도 뚜렷한지..?

 

 

난 엄마 때문에 한국식 돈까스 먹을때마다 엄마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부산 동래구 온천장에 위치한 '돈까스의 집' 식당이다..

어릴 때 나와 형 그리고 엄마,아빠가 외식으로 하러 갔던 바로 그 식당이다..

몇 달 전인가,, 우연히 이 거리를 지나다가 반가워서 밥 먹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난 이때 비후까스를 먹었다.. 비프까스.. 비프카츠죠.. 

 

 

 

 

 

 

Hey!! What's up!!

Master

 

심야식당 마스터 야부리 입니다!!

 

84년생 대한민국 나이로 34살이구요,,

아직 미혼 입니다..

고향은 부산이고,,

현재 부산하고 포항을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아베 야로의 만화 '심야식당'을 즐겁게 읽었고,,

김승우 주연의 한국판 '심야식당' 드라마도 재밋게 봤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개봉한 '심야식당' 일본 영화도 재밋게 봤구요..

아직 '심야식당' 일본판 드라마는 보지 못했지만,,

이 블로그 작성하면서 틈틈히 챙겨 보려구요!!

 

 

이 블로그는 제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음식과 관련된 추억을 썰로 적어보는 블로그 입니다..

제가 부산 사람인 특성상 대화 내용이 사투리로 나오는 경우도 있고

제 주위 인물이 거침없이 묘사가 될텐데..

거리낌없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아 마지막으로 전 일체 음식점의 광고 없이 블로그를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