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부리의 심야식당

위스키 맛이 난다고? (고량주)

Midnight Diner

술을 마신 다음 날 해장을 하기 위해

중국집으로 전화해서 짬뽕을 주문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 술에 찌들려 본 사람이라고,,,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오늘 이야기는 그렇다 찌들린 얘기다..

 

 

10년 정도 지난 일으로 기억을 하는데,

내가 20대 중반의 일이니,,

그땐 뭐 다들 그렇지 않나?

나와 친구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만나서 술잔을 기울였다.

6~7명의 친구들이 만나서 술을 마신 것 같은데,

1차를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2차로 중식 주점을 찾았다.

지금은 찾아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번화가마다 자주 보였던 '상하이 객잔' 이라는 중식 주점 이었다.

 

부산 동래역 근처에 위치했던 우리가 갔었던 상하이 객잔이다..

현재는 1층 조선 칼국수와 2층 상하이 객잔 모두 다른 가게로 바꼈으므로,,

뭐 거림낌 없이 그대로 올린다!!

 

 

1차에서 이미 얼큰하게 취해있었고,

2차에서 뭐가 그리 배가 부르겠냐?

6~7명이서 탕수육 큰거 하나랑 짬뽕탕 하나 시켜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근데 저 멀리 다른 테이블에서 고량주 (빼갈)을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다.

 

 

" 야! 우리도 저거 마셔볼래? "

 

" 메뉴판 달라고 해봐! "

 

" 보자 보자.. 천진 고량주? 이거 싸네 작은거 4천원밖에 안한다! "

 

" 시켜라!! 시켜라!! "

 

그렇게 우리는 고량주를 한 병 시켰는데,,

우리 앞으로 도착한 고량주는,,

 

사이즈별로 가격이 달랐다.

우린 당연히 제일 싼 제일 작은 사이즈를 시켰었고,

6~7명이 일인 당 한잔도 안되는 그런 작은 용량이었다.

 

 

" 엥 이게 뭐고? 이게 4천원이가? "

 

" 한잔씩만 못 마시겠네? 몰라 빨리 마시면 마시면 되지! 난 마신다!! "

 

 

한 친구가 뭣도 모르고 자기 소주잔에 고량주 한 잔을 따라서 마셨다..

난 말리지 않았다.. 말릴 필요가 있냐고?

앞선 포스트에서 다룬 적이 있는데, 사실 난 중식 레스토랑 서빙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때 천진 고량주는 물론이고 갖가지 고량주를 마셔봤었다.

어땠냐고? 풋

 

 

" 으아아아아앙나앙악~ 이게 뭐고? 아 목이 탄다 타 식도가 타고 있다 "

 

 

마셔본 사람은 안다.

특히 천진 고량주는 도수가 48%에 이른다.

한 두번은 맛을 봤던 스카치 위스키와 도수는 비슷하지만,

고량주 첫 경험의 짜릿함은 위스키 첫 경험의 짜릿함의 10배 아니 100배 이상이다..

 

 

" 미친놈 ㅋㅋ 우리가 이거 마시면 죽는다!! "

 

난 중식 레스토랑에서 일할 당시에 고량주를 맛 본 후,,

일이 진짜 힘들 때, 육체적 고통을 잊기 위해 한잔을 마셨던 기억이 났다.

그 만큼 적어도 나에게는 에너지 드링크를 넘어서는 마약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겁 없을 나이의 친구들 몇 명은 자신있게 고량주를 마셔봤고,,

다들 우웩 우웩을 외쳐대며

 

" 저거 갖다 버려라!! "

 

 

소주 한 잔 정도의 양이 남아있는 고량주의 병을 '희쇠' 라는 친구가 들었다.

(희쇠는 희성이 변강쇠라는 뜻이다)

그러고는 소주가 담겨져있는 자신의 소주잔에 고량주를 조금 따라더니 한잔을 원샷했다.

 

 

" 끼야아악,, 와우 야 이거 맛있다!! 위스키 맛 난다! "

 

" 뭐? 뭐라고? 위스키? "

 

 

20대 중반의 나이였던 남자들에게 위스키는 나름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당시는 위스키를 파는 곳이라고는 여자들이 나오는 술집이나 나이트 밖에 없었고,

그만큼 고가를 줘야 마실 수 있는 그런 비싼 술이었다.

 

희쇠의 말을 믿고 우리는 천진 고량주를 더 시켜서

모두들 자신의 소주에 고량주를 타서 마셨다.

비율은 8:2 정도?

근데 이건,,

 

 

유레카!!

 

 

진짜로 소갈 (소주+빼갈)에서는 위스키 맛이났다.

그 당시 하이트진로 회사에서 나왔던 '랜슬롯'이라는 저가 위스키가 있었는데,

그 위스키의 맛과 비슷했다.

특유의 박카스 향 같은것이 나는 톡쏘는 맛이라고 할까?

 

내 친구들,,

왼쪽에서부터 한데렐라, 이밥솥, 도토끼, 제모, 찌바리, 폰태

그리고 오른쪽 밑에 거대한것이 득보

희쇠는 사진에 없네,,

그리고 무톰보랑 돌콩도 안보네요..

다들 엄청 촌스러워 보이는데,, 나름 이때는 이게 유행이었을 겁니다..

 

 

 

우린 모두 극찬을 하며 소주와 천진 고량주를 타서 만든 소갈을 마셔댔다.

지금이야 보드카나 데낄라나 아그와? 이런 것들 팔기도 많이 팔고

위스키도 쉽게 접할수 있지만,, 그땐 정말 비쌌고 파는 곳도 많이 없었다.

보드카로 유명한 앱솔루트도 오리지널 말고는 국내에 시판되는 것도 거의 없던 시절이라,

소갈은 우리에게 너무나 맛있는 술이었다.

그렇게 천진 고량주 병만 5병을 넘어갈때 쯤 이었다..

 

 

다소 재밋는 상황이 벌어졌다.

난 소갈이 맛있긴 했어도 고량주의 위험성을 알기에 조절해서 마시고 있었는데,

뭣도 모르고 맛있다고 계속 마셔대던 친구들이

한 두명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소주와 타서 마시긴 했어도

내가 대충 계산해봐도 도수가 28도 가량은 되는 술을

스트레이트로 그렇게 마셔댔으니 버틸수가 있나?

 위스키처럼 얼음을 넣어서 마신것도 아니고..

 

 

정확히 나 그리고 한 명,, 누군지는 모르겠다..

제외한 모든 친구들이 술집에 뻗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난 친구들 사이에서 술이 약한편에 속하기도 하고,

20대 중반의 남자들이라면 한창 술을 잘 마실 때의 나이인데,,

2명 빼고 4~5명이 술집.. 2차에서 뻗다니!!

부산 남자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존심에 금이 갈,, 아 됐고..

 

 

그렇게 어떻게 다들 집에가고 어떻게 헤어졌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린 앞으로 어디서 술을 마시든,

안주가 아무리 좋은 중식 메뉴라고 해도 고량주는 쳐다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고량주는 나와 친구들에게 공업용 메탄올 취급을 받는 그런 술이 되어버렸다.

 

 

 

 

 

지금 글을 적고 있는 난,,

사정이 있어서 앞서 언급한 친구들과 잠시 떨어져있다.

야부리의 심야식당이라는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생각해보니,,

반 이상이 친구들과의 에피소드인데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많이 아쉽다.

하지만 영화 친구에서 나온 대사가 사실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좋은 모습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 친구 아이가~ 친구끼리 미안하거 없다!! "

 

 

 

 

기적의 포상휴가 (수제비)

Midnight Diner

04-71021923

 

남자들은 자신의 군번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나도 그렇다.

난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육군 제12보병사단 포병연대 79포병 대대에서 군 복무를 했다.

포병,, 뭔가 그럴싸하지 않은가?

하지만 난 포병 부대에서 조리병,, 즉 취사병으로 복무를 했다.

 

 

내가 취사병을 하게 된 계기 자체부터 좀 웃긴데,,

난 2004년 6월 22일에 102보충대에 득뽀, 제모라는 두 친구와 같이 입대를 했다.

동반 입대는 아니었고, 우연히 같은 날 세 명의 친구가 입대를 같이 하게 되었다.

이 중에서 제모라는 친구가,, 군 입대 전 한식, 양식, 중식 조리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을 했었는데,,

어디서 장군 조리병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편해 보일까 봐,,

입대를 할 때 그 자격증을 다 들고 입대를 했다.

 

왼쪽부터,, 득뽀, 제모,그리고 나 야부리

득뽀의 눈시울이 젖어있다..ㅋㅋ

 

 

그런데,, 실제로 보충대에서 장군 조리병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모는 준비해온 자격증과 함께 손을 들고 신청을 했고,

뭔가 삘이 왔다고 해야되나? 편한 느낌...? 그런 느낌적인 느낌?

평소에 제대로 된 요리는 해본적이 없던 나도 손을 들고 신청을 했다.

그리고 난 나의 경력 기술서를 온갖 거짓 정보로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호텔관광학부 외식조리학과 전공이며,

1학년 때 조리 동아리 소속으로 주위의 어들에게 요리 봉사활동을 다녔으며,

군 입대 전 서빙으로 알바를 했던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서빙이 아닌 주방에서 근무를 했던 것으로 그렇게 나름 경력을 만들었다.

 

차이니즈 레스토랑 '친친' 근무 시절.. 누가봐도 서빙인데,, ㅋㅋ

 

 

근데 이게 웬일,,

 

나랑 제모는 최종 8명 정도 남은 면접까지 가게 되었다..

실제로 요리를 할 줄 아는 제모는 그렇다고 치고,, 난 뭐지..ㅋㅋ

내 거짓 정보가 그렇게 훌륭했던 것일까,,?

그런데,,

 

 

" 야부리하고 제모 있나? "

 

" 네!! 여기 있습니다!! "

 

" 너희 둘은 돌아가라!! "

 

 

우린 최종 면접을 보지도 못하고, 떨어지게 되었다..

이유는,, 보충대에서 인성 검사라고 350문항 정도를 체크해서 푸는 검사가 있었다.

350문항 중에 동일 문항도 상당히 많이 존재하는데,

이게 귀찮아서 제대로 체크하지 않고 막 찍었던 우리는,,

인성 부적격자로 판단되어 장군 조리병 면접에서 떨어진 것이다..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고,,

우리는 장군 조리병 지원했던 기록이 남아있어서 최종적으로 둘 다 취사병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취사병 생활이 시작 되었다.

 

 

근데 난 요리적 센스가 나름 있는 편 이었다.

어릴 때 부터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으면 옆에 가서 하는 걸 보고,

혼자 있을 때 흉내를 내서 만들어 먹어 보기도 했고,

밥 정도는 할 줄 알고, 김치볶음밥과 김치찌개 정도는 끓일 줄 아는 그 정도의 남자였다..

 

 

 

취사병 생활,,

장단점이 극명한 군 보직이다.

일단 취사병은 군인들의 기상 시간인 6시보다 일찍인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조식을 준비한다.

(그대신 야간 근무,, 불침번이나 보초근무는 없었다)

그리고는 조식을 다 마치면 배식을 하고 중식을 준비하는 9시 반 정도까지 휴식을 취하고

11시 반까지 중식 준비를 마친 후 3시 반까지 휴식을 취한다음

5시 반까지 석식 준비를 마치고 취침 시간인 10시까지 휴식을 취하는 특수한 보직이다..

그리고 취사병에게 주말이나 휴일은 없다.

주말이나 휴일이라고 군 장병들이 식사를 안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취사병들은 1년 365일 쉬지 못하고 밥을 만들게 된다.

 

취사병 단체 사진,,

다른 부대원말로는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도,,

우리에게선 짬 냄새,, 음식 냄새가 났다고 한다..

 

 

하지만 난 비교적 취사병 생활을 잘 적응했다.

다른 보직에 비해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여유도 있고,

특히 다른 보직의 군인들이 훈련이나 진지공사 등 힘든 일을 할때도

우리는 밥만 만들면 됐기 때문에, ㅋㅋ

물론 대량의 식사를 준비하는게 힘들긴 했지만, 비교적 나에게는 알맞는 보직이었다.

(여름의 취사장 내부 온도는 45도 가량 올라간다.. 그땐 정말..)

 

내가 제대 하는 날 먹은 마지막 짬밥..ㅋㅋ

소고기무국에 김치, 김, 그리고 맛살 볶음 인듯

 

 

 

서두가 많이 길었다.

 

 

취사병의 최고 장점이라고 하면,

뭐니뭐니해도 식재료를 가지고 맛잇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린 조식, 중식은 우리가 만든 일반 짬밥을 먹었지만,

석식은 항상 따로 재료를 가지고 특식을 만들어서 먹었다.

 

주로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소불고기덮밥 등

고기가 듬뿍 들어간 특식을 만들어서 먹었고,

항상 석식 준비를 하며 게임을 통해 특식을 만들 사람을 정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은 내가 게임에서 졌나보다..

그래서 난 특식 메뉴로 수제비를 만들기로 했고,

그 날 석식에서 내가 맡은 메뉴가 국 이었는데, 무슨 매운탕이었다..

국은 다소 물 끓은 시간 등 준비 하면서 시간이 많이 남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미리 반죽을 만들었다.

그런데 반죽을 내가 좀 많이 만들어 버렸다..

8명이서 먹을 반죽을 만들면 되는데,

2배가 넘는 한 15인분의 반죽을 만들어서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되나? 고민 중이었다.

 

난 개인적으로 멸치 국물로 맛을 내고

감자와 수제비 반죽만 들어간 깔끔한 수제비를 좋아한다.

그리고 사진처럼 양념장에 다진 고추와 파, 양파를 넣어서

기호에 맞게 넣어 먹을 수 있는 그런 수제비 완전 좋아한다!

 

 

 

그래 그거야!!

 

 

문뜩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요리가 매운탕 아니가?

매운탕에 수제비 넣어서 많이들 먹자나?

이런 생각이 났고, 그 처리가 힘들었던 반죽을 펴서 매운탕에 투하하기 시작했다.

300인분의 매운탕에 맞는 양은 아니었지만,, 뭐 건져 먹는 사람이 대박인거지 ㅋㅋ

그런데 갑자기,,

 

 

" 충성!! "

 

대대장이 아무런 말도 없이 취사장에 들어왔다..

난 왼손에 뜯다만 밀가루 반죽을 들고 오른손으로 경례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대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 야부리.. 자네는 뭐 하고 있는가? "

 

" 일병! 야부리! 밀가루가 좀 남아서 매운탕에 넣으면 맛있는 걸 같아 수제비를 만들어서 넣고 있었습니다! "

 

 

난 나름 임기응변으로 대처했다.

사실 군대안에서의 음식 재료는 함부로 다뤄서는 안된다.

모자라서도 안되고, 남아서도 안된다.

항상 정해진 음식에 모든 재료를 딱 알맞게 써야된다.

그러니 내가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한 말 자체가 큰 오류를 범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대대장은 아무런 말도 없이 취사장을 한 번 둘러보곤 돌아갔다.

 

 

걱정이 많았다.

나와 그리고 취사 분대장 그리고 급양관이라고 불리는 간부까지

영창을 가거나 징계를 먹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일단 그 날 당일은 큰 문제없이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다음 날 기상 나팔이 불고 해가 밝았다.

갑자기 인사 장교가 나를 찾았다..

 

 

' 아,, 드디어,, X됐다..'

 

 

근데 이게 뭔 소리인지,,?

 

 

난 상과 함께 표상 휴가를 받게 되었다.

뭐 대충 장병들의 영양과 맛 있는 식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진짜 어안이 벙벙했다..

 

상과 포상 휴가를 받은 난,

사실을 아는 우리 취사병들과 급양관과 함께 입을 굳게 다물었고,

우리 부대에서 유명한 '수제비 휴가'를 받게 되었다.

 

 

그 후에도 대대장이 내가 맘에 들었나보다..

때때로 나에게 특식을 요구하고는 했고,

난 그럴때마다 있는 재료와 없으면 급양관이 밖에서 재료를 공수하기까지해서 대접했다.

 

대대장에게 대접한,,

닭고기케슈너츠와 고등어구이

 

 

 

우리나라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포상 휴가를 받은 장병들이 많다.

하지만 나처럼 거짓 수제비 휴가를 받은 장병은 또 있을까?

 

어쩌면 수제비를 좋아했던 나에게 내가 스스로 그 날 특식 메뉴를 수제비를 골라서

스스로에게 기회를 제공한 점.. 그리고 나름의 임기응변을 발휘한 점 등,,

여러가지 운과 상황들이 겹쳐서 받게 된 휴가지만,

그때 생각을 하면, 평생 쓸 운을 이때 다 쓴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아직 로또 4등도 당첨이 안 되는 건 아닐까..?

 

 

 

 

 

 

나만큼 특이하게 포상 휴가를 받았던 분들 댓글로 남겨주세요!!

너희들은 고등어 좋아 하자나? (고등어구이)

Midnight Diner

대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난 전혀 뛰어난 학교라고 할 수 없는 지방 4년제 대학교를 다녔고,, 

(네이버 웹툰,, '복학왕'의 기안대학교보다는 조금 좋은,,)

수업을 마치면,,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가는일이 대부분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학교가 부산에서 반송이라는 다소 외곽에 위치해 있었기에,, 학교 앞에서 마시기 보다는

동래라는 부산의 한 번화가로 나와서 자주 술을 마셨다..

특히 대학교의 많았던 친구들 중 아직까지도 '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친구와 주로 술을 마셨는데,,

(이 친구는 별명답게 뚱뚱했다.. 그리고 지금은 더 뚱뚱해졌다..)

스물 다섯, 여섯 살 때쯤의 대학생이 무슨 돈이 많겠는가,,

우리는 싸고 그리고 조금은 조용한 단골 술집을 찾기 위해 애를 썼고,,

우리는 동래에서 몇 군데의 단골 술집을 만들게 된다..

오늘은 그 단골 술집 중 한 곳의 이야기다..

 

 

 

'즐거울 樂'

 

이 가게의 이름이 즐거울 락이었는데,, 첫 인상은,, 흠,,

통나무 등으로 인테리어가 되어있었고,, 조금은 많이 머리가 벗겨진 왜소한 체격의 인상 좋은 사장님이 우리를 반겼다..

 

 

여기다 그래 여기야!!

 

즐거울 락의 내부 모습이다

 

 

고등어구이, 오뎅탕, 계란말이, 새우구이 같은 포장마차같은 메뉴를 파는 가게였고,,

고등어구이 같이 싼 메뉴는 단돈 7천원에 불과한 아주 저렴한 우리에게는 딱 맞는 그런 가게,,

 

우리는 여기서 주로 고등어구이를 먹었다.

부산에서는 고등어구이가 두가지 종류로 나눌수가 있는데,,

고등어를 맛있게 구은 후,, 찍어 먹을 수 있는 간장과 함께 나오는 일반 고등어구이와

고등어를 구은 후 마지막에 매콤달콤한 양념을 발라 나오는 양념 고등어구이 (고갈비라고도 불린다)

 

 

즐거울 락에서는 두가지 고등어 구이 중 선택을 할수가 있었고,,

우린 담백한 일반 고등어 구이를 주로 먹었다..

그리고 고등어 구이와 함께 주로 소주..를 즐겼지만,,

가게의 인테리어 덕분인지,, 아님 너무 많이 둘이서 마셔서 취하기 싫어서인지,,

돼지와 나는 소주 외에도 대통이라고 불리는 대나무 통술도 많이 즐겼다..

 

 

대나무 통술은 병으로 나오지 않고 특유의 대나무 통에 담겨져서 나왔는데,,

도수 자체가 소주보다 약했고,, 맛은 청하 비슷하게 목넘김이 훨 좋았던 술이다..

 

 

고등어 구이를 시키고 소주 2병 정도 마시면,, 계산 할 금액이 13,000원

주머니가 가볍다 못해 거의 털털 비어있었던 우리에게는 너무나 좋은 가게였고,,

그래서인지 우리 둘은 이 가게에 일주일에 평균 3번 정도는 들르게 되었다..

(그래도 돼지는 나보다 풍족했다.. 그래서 돼지가 나보다 돈을 많이 냈었다.. 고맙다..)

 

우리는 그때 어려서 단골 가게라도 쉽게 사장님과 친해지거나 그러지는 못 했는데,,

즐거울 락의 사장님은 편한 인상과 함께 우리에게 먼저 다가왔다..

40대 초반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성중공업 정직원으로 근무하다가 명예퇴직을 하고 가게를 차렸단다.. 내 기억으론 그렇다..

워낙 자주오다보니 고등어 구이 하나 시키는 우리에게도 많은 서비스 안주를 주었었고,,

우리는 염치없게도 넙죽넙죽 잘 주워 먹었었다..

 

 

그렇게 2년 정도 그 가게를 들락 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 야부리야! 돼지야! 너희들 이번 주 금요일에 뭐하니? 술 마시러 올래? "

 

 

뭐지 이건,, 한번도 이런적이 없었는데,, 헌팅인가,,

 

 

" 학교 마치면 아무것도 할 것 없어요,, 왜요? 그 날 뭐 있어요? "

 

" 사실은 가게를 접기로 했어.. 그래서 그 날 가까운 사람들 모아서 파티 하려고.. "

 

" 네.. 꼭 오도록 할께요.. "

 

 

다소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가게에 손님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동래라는 곳이 신종 번화가로 한창 뜨고 있을때쯤이라,, 가게의 월세도 엄청 났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단골 가게가 사라지다니,, 그렇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돼지와 나는 그 날 즐거울 락으로 갈건지 말건지를 한참을 고민했다..

다소 슬프기도 했고,, 사장님의 주위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 같은데,,

우리가 뭐라고 가서 그 자리에서 좀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컸다..

우리는 동래의 다른 가게에서 1차를 하다가 결국은 즐거울 락으로 가기로 하고 향했다..

 

 

 

" 야부리, 돼지 왔니!! 잘 왔어 "

 

" 네 형님 (첨엔 사장님이라고 부르다가 어느 순간부터 형님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

 

" 그래 뭐 먹을래? 안주 아무거나 다 되니깐 골라봐! 다 공짜야 "

 

 

공짜.. 이런 기회가 많이 없는데,, 우린 눈치가 보였다..

사실 이 가게에는 저렴한 고등어 구이 같은 메뉴가 주 메뉴 였지만,,

대하구이같은 그때 당시로 25,000원 가량의 고가 메뉴도 상당히 존재했었다..

우린 망설였다..

 

 

" 돼지.. 대하구이 달라고 할까? "

 

" 좀 그렇지 않나? 어쩌지,, 진짜 어쩌지,, " 

 

 

사실 우리는 둘 다 A형에 소심한 대학생이었다..

결국 그렇게 우리는 아무것도 고르지 못하고,, 계속 망설이고만 있었다..

 

 

" 야부리, 돼지야 왜 아직 안 고르니? 먹고 싶은게 없니? "

 

" 아니요,, 그게.... "

 

계속 그렇게 망설이고만 있으니,,

 

" 너희들 고등어 좋아 하자나? 맞지? 고등어 해줄께 있어봐.. "

 

 

 

OH MY GOD....

 

 

사장님,, 아니 형님,, 우리가 고등어를 좋아하긴 하지만,,

오늘 공짜라면서요,, 그럼.. 꼭 그렇게 고등어를 먹을 필요가..

하지만 소심한 우리는 결국에는 사장님이 맛있게 구워온 고등어를 먹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 가게에는 사장님의 지인이 많았기에,, 우리는 급하게 고등어와 소주잔을 비우고 가게를 떠났다..

 

 

" 형님 우리 이제 가보겠습니다.. "

 

" 벌써 가려고? 더 먹지,, 다른거 더 해줄까? "

 

" 아니요.. 빨리 가봐야해서요.. "

 

" 그래,, 앞으로 뭐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공부 열심히 하고!! "

 

" 네 형님,, 형님도 앞으로 뭐 하시든지 행복하세요,,!! "

 

 

 

즐거울 락에서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 이후로 돼지와 나는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면서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돼지는 방송작가가 되겠다는 푸른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을 했다..

이상한 케이블 채널 막내 작가를 하더니,, 결국엔 메이저에 입성은 못하고 택배를 했다..

 

 

돼지가 서울로 떠난게 한 7년은 된 것 같은데,, 그 이후로 우리가 본 횟수는 10번도 안되는 것 같다..

앞으로 이 블로그를 작성 하면서 돼지와의 얘기가 많이 나올 것 같은데,,

돼지와 가장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 즐거울 락 그리고 고등어와의 추억이다..

물론 우리는 생선 보다는 육고기를 좋아했지만,,

형편 탓에 우리의 소주 파트너가 되었던 고등어,,

사는 지역이 달라서 앞으로 저녁에 만나서 고등어와 함께 소주 한 잔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려나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일반 고등어 & 양념 고등어 두 마리 시켜놓고,, 소주 한 잔 마시고 싶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절했던 즐거울 락 사장님,, 아니 형님,,

머리는 더 벗겨지셨는지? 건강 하신지? 지금은 무슨 일 하시는지..?

만약에 만나게 되면 지금은 제가 소주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